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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죽음 본문

2016

파리의 죽음

@amie 2016.10.17 23:37

자려고 들어왔는데 파리 한 마리가 방 안에 들어와 있다. 강한 동작으로 절도 있게 움직이며 여기저기 벽에 부딪히는 그런 큰 놈. 내보내기 전까지는 나도 잘 수 없을 듯해서, 화장실 복도 쪽의 불을 켜두고 내 방은 소등한 채 문을 열어놓았다. 나는 어두운 방 침대에 앉아 일기를 쓴다. (제발 내 모니터에 와서 부딪히지는 말아주길.) 호텔에서 늑장을 부리다가 체크아웃을 했고, 브런치 식당에서 책을 좀 읽다가 학교에 간 아이들을 픽업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짧은 외유. 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 권여선 작가처럼 술로 과거와 미래 사이의 단절을 만들 수 없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 일상을 가끔씩 이렇게 중단시키는 크고작은 사건을 자의로든 타의로든 만들어내야 한다. 왜 단절이 필요한가 하면, (...) 그것은 감사를 위해서다.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 나는 죽음에 잠겨 있다. 방법과 시점을 이러저러하게 고안해보고 또 죽음 전후의 사정에 대해 상상한다. 남들처럼 잘 죽어야겠다든가 하는 목표 때문이 아니라 죽음 그 자체에 쉽게 매료되어버린다. 하지만 소중하다는 말 외에 다른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옆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좀더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있으므로 기왕 삶을 귀히 여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고 싶고, 또한 감사하는 상태를 좋아한다.

나를 기어이 휘어저놓고야마는 온갖 말의 파장, 감정의 파도는, 모든 것을 연관지으며 미친듯이 굴러가겠다는 세계의 포효 속에 있을 때 그것이 거의 전부인 것처럼 내게 속임수를 쓰는 경우가 많고 여전히 그 세계 속에 있으면서 한 걸음 떨어져 나 자신을 바라볼 때 생겨나는 무의미와 무쓸모에 종종 역습을 당하지만, 잠시라도 빠져나와 세계를 관망하는 자리에 멀찍이 서있을 때 나는 또한 쉽게 무의미 자체의 무의미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1박의 외유로 정말 감사를 다시 되찾았느냐고 묻는다면 조금은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집에 돌아와 그리 힘들이지 않고 여행 짐을 풀고 빨래를 하고 부엌일을 했으며, 인터넷으로 해야 할 몇 가지 사무적인 일들을 처리했고, 밤에는 남편과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그리고 무사히 내 방으로 들어와 일기를 쓰고 있으니 다행이다. 나는 몇 가지 충동을 이겨내고 어쩌면 또 다른 충동이 발현되기까지의 평화를 벌었다.

내가 벌어들인 평화는 저 커다란 파리처럼 왱왱거리며 내 삶을 가로지르던 죽음을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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